길 - 윤동주
지성주의 사회 속에 내가 물들어있었다. 그것도 흠뻑말이다. 지식이 삶의 전부인 줄 알아 지식을 배우는 것에 열광했다. 지식이면, 지성이면 이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을것 같았다. 아니, 우스운 것은 분명 지식이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알고 있었고 또 부질없는 것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실감하지 못했는지 지식을 끝없이 갈망했다.
지성주의에 젖어든 나는 인생 또한 지식화하고 싶었다. 인생의 의의를 알고 싶었다. 인생의 방법은 살아가며 조금씩 배워간다고 하지만 적어도 내가 살아가는 목적에 대해서 명확히 알고 싶었다. 그러나 답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고민을 하면 할수록 내가 규정하고자 한 삶의 목적라는 것은 사그라들어갔고,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내 인생 전반적으로 볼 때 그저 일시적인 욕구와 욕망을 바라보고 행해지는 일이 되어감을 깨달았다. 이는 모두 사라질 것들임에도 이것들에 열망하고 있었다. 인생에 대한 근본적 의의는 무엇일까? 또 되뇌이다.
하지만
인생이 부질없어 보였다. 모든게 헛되고 헛되었다.
나는 창조주의 사랑을 잊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잊고 있었다. 그렇다. 외로웠다. 외로워서 혼자 괴로워하며 인생의 의의 따위나 고민하고 있었다. 내가 해결할 수 있을거 같았다. 하지만 내 삶은 더 나아지지 않았고, 더욱 피폐해져만 갔다. 그렇게 허탄한 고뇌를 반복하다가 무심결에 책상에 올려져있는 종이에 적힌 윤동주 시인의 <길>을 읊어보았다.
평소 뜻은 명확히 이해가 안되었지만 나를 찾아간다는 말에 정말 좋아하던 시였는데, 오늘 다시 읊다보니 이 시에는 윤동주 시인의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이 묻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무엇을 어디다 잃어버렸는지도 모르지만 나의 호주머니를 더듬으며 길을 나아갔다. 내게서 무엇인가를 찾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래서 호주머니를 뒤적이고 또 뒤적였다. 하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내가 걸어가는 길에는 돌담이 주-욱 느러져 있었다. 끝없이. 길 또한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하듯이 반복되었고, 끝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반복되는 일상. 반복되는 삶 뿐.
그렇게 허탄히 길을 가다가 돌담을 더듬어 보았다. 눈물이 났다. 길을 가는 동안 내 주머니 속에서 이 길을 가는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의 지성과 내가 가진 능력들은 실로 대단해보여서 내 삶쯤은 영위할 수 있을것 같았고, 노력하면 세상도 바꾸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게는 아무것도 없었고, 나는 이 길의 의의를 전혀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그러다 어떠한 연유로 하늘을 올려다 보았는데 이게 왠걸?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다. 너무나도 푸르러서 눈부시고 아름답다. 이 길을 걸어가는 동안 나는 나에게서 아무런 '삶의 이유' 같은 것을 찾을 수 없었기에 길에만 더더욱 집중했고 하늘을 바라보지 못했다. 그저 삶이 애통했던걸까? 아니면 절망과 낙담이었을까? 하늘은 내가 걷는 길과는 다르게 아름다워 보였다.
그렇지만 희망이 조금씩 생겼다. 저 푸르른 하늘.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내 삶에 평안과 안식이 주어졌던 것이다. 허나 하늘에만 감사하며 삶을 살아간다면 길을 걸어갈 수 없으리니, 내게 주어진 하늘이란 선물은 잠시 미루어두고 다시 길을 바라본다.
길. 풀 한포기 없는 삭막한 이 길을 걷는 것이 내게 고난인 것만은 아니었다. 담 저쪽.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 담 저편에 내가 남아있으리라. 그렇다. 내가 사는 것은 고통을 참으며 비통하게 삶을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다만 잃은 것을 찾으려는 까닭이다. 내게 아직 보이진 않지만, 그리고 그것이 있다는 확증도 없지만, 이 길을 만들고 하늘도 만들고 돌담도 지은 창조주가 내 삶을 그리 허탄하게 창조하지는 않았으리라. 하는 믿음으로 내가 잃었던 것을 찾으려 오늘도 이 길을 걸어간다.
아무리 고민해도, 아무리 삶에 대한 문제들을 내 지식으로 해결하려 해도 완벽히 보여지진 않을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뭘 잃어버린지도 모르니 말이다. 내 호주머니에선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 이 길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다만 돌담 건너편에 분명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내가 남아 있을 것이다. 아니 '있다.'라고 확신하리라.
이제는 더이상 지성으로 삶을 영위하려 노력하지 않으리라. 지성은 삶을 살아가는 데 쓰이는 유용한 도구일 뿐. 결코 이것으로 내 삶을 통체로 파헤칠 수 없다. 내 삶은 창조주가 지으신 심오한 의미가 있으면서도 아름다운 삶. 어느 하나의 잣대로 규정할 수 있는 '상품' 같은 것이 아니다.
이제부터는 낙담하지 않으리라. 내 삶은 그 어떠한 것으로도 평가내릴 수 없는 경이한 것이므로 결코 낙담거리나 한탄거리 같은, 꼭 치워야 할 쓰레기같은 언짢은 것이 되지 않는다. 그저 소망과 기대가 가득한 선물일 뿐.
허무함도 없으리라. 내가 지금, 이순간에 느끼는 삶의 모습은 창조주가 내게 부여한 삶의 모든 의미를 나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지금은 그저 돌담길의 모습이지만, 또 이 순간에는 부단히 인내하며 끝없이 견뎌가야 할 것 같은 길이지만, 길을 걷다보면 푸르른 하늘도 보이고, 북실북실한 구름도 보이고, 길에 반짝이는 모래들도 보일 것이며, 마침내는 돌담 또한 사랑하게 되리라.
윤동주 시인의 시가 내 인생의 의의와 목적에 대한 고민을 명확히 꾀뚫으면서도 더 모호하게 만들었다. 윤동주 시인의 삶에 대한 통찰에 한번 더 감탄하며..
다시 내 앞에 펼쳐진 끝없는 길, 창조주가 지으신 아름답고도 심오한 이 길에서 어떤 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어떤 삶을 누려나가게 될까..하는 기대감과 소망함으로 걸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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