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미학> 박찬영
내 맘에 고독이 차오른다.
인생에 대한 사색은 끝이 없어서
하나의 사색거리가
탐스럽게 여물어 있기에
한 입 베어보려 움켜쥐면,
고독으로 가득 차 있는
사색이란 열매는
터져버린다.
그러면, 정녕 그리되면,
나의 마음 밭은 고독으로
더럽혀진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는,
고독의 거름을 머금은
사색의 열매들이 갑절로
자라난다.
그럴 때엔
내가 어디로부터 왔으며,
어디를 향해 가는지,
무엇을 위해 이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어가고 있는지,
생각해본다.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시간은 가고,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세상은 흘러간다.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이 보릿고개는 지나가고,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왕국은 세워진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 세상을 견뎌내는 척하며
남들 살아가듯 사는 일.
무기력에 젖은 나의 영혼은
그저 길 위에 드러눕는다.
하늘을 바라보니
구름이 무심히 떠다니고,
나무를 바라보니
나뭇잎들은 아무런 규칙 없이
그저 팔랑인다.
그러다가 따스한,
아주 따스해서
감탄마저 하지 못할
바람 한 가닥이 나의 얼굴을
감싸 안는다.
아아..
바람은 어느새
폭포가 물을 토해내듯
내 얼굴에 쏟아진다.
나를 마구 감싼다.
그리고 나의 미운 얼룩들이,
고독의 얼룩들이, 가벼이
바람을 타고 날아간다.
저 멀리 날아간다.
온화한 그 바람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나는 모른다.
그 바람이 어디로 가는지도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바람은 나를 사랑하고,
이로써
나도 바람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그럴 때엔
내 삶에 대한 연민이
부풀어 오른다.
고독을 토해내며 공허해진
내 맘 속에,
바람이 가득 채워진다.
사랑이 가득 채워진다.
그렇다고 사색이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었다.
고독의 열매는 여전히 남아
나에게 수확이란 사명을
심어준다.
하지만 이제 그 고독의 열매는
더 이상 나에게
두려움과 고통이 아니다.
공허함과 무기력함이 아니다.
이제 나에게 그것들은
두근거림과 사랑의 속삭임이다.
내 맘에 고독이 차오른다.
인생에 대한 사색은 끝이 없어서
하나의 사색거리가
탐스럽게 여물어 있기에
한 입 베어보려 움켜쥐면,
고독으로 가득 차 있는
사색이란 열매는
터져버린다.
그리고 마침내
내 맘을
사랑으로 적시었고,
내가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야 하는,
그 이유가 되었다.
2016.06.04 IVF 동아리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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